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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남일보]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높은 문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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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광주백범기념관 조회 2,248회 작성일 22-11-2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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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현 대동문화 출판미디어 본부장



[문화산책] 광주 학동 광주백범기념관 마당에 역사공원이 있다. 2011년부터 2012년에 조성된 이 역사공원에는 김구 선생의 일대기 기록과 휘호 전시벽, 백범 김구 선생 동상 등이 있다.

 

김구 선생의 휘호들을 감상하다가 지난행이(知難行易)’라는 구절을 발견했다. ‘아는 것은 어렵고 행동하기는 쉽다.’라는 뜻이다. 안중근 의사는 19103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는데, 이 글씨는 1949326일 안중근 의사 순국일을 맞아 쓰신 휘호다.

 

중국 쑨원이 말한 어록으로 지이행난(知易行難)-아는 것은 쉽지만 행동하기는 어렵다.’라는 말과 반대된다. 제대로 알고, 제대로 실천하는 것 다 중요하다는 뜻이겠지 싶다.

 

백범 김구 선생의 어록 중에서 다음 대목은 정말 문화예술을 생계의 업으로 삼은 나 같은 처지의 사람들 마음을 한없이 한없이 위로해준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2022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렇게 경제, 외교, 정치 등에서 어려운 이유는 인의와 자비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등을 백범 선생이 두드려주시며 하실 말씀인 것만 같다. 백범 김구 선생은 1898년 치하포 사건으로 탈옥해 광주 학동마을에 잠시 머문 적이 있다. 해방 이듬해인 194671세였던 김구 선생은 다시 삼남 일대를 방문하는데, 전남 보성에서 광주로 가는 길에 동포들이 환영했다.

 

광주에 도착하여보니 도처에서 동포들이 주는 각종 기념 선물 해산물 육산물 금품 등을 종합한 것이 차에 가득 찼다.” 백범은 광주에 전재민이 많다는 말을 듣고 서민호 광주시장에게 전재민을 돕는 데 보태어 쓰라고 부탁하여 주고 광주 환영회를 마쳤다.

 

백범이 받은 정치 후원물품을 현금으로 바꾸고 지역 유지들의 웃돈까지 더해 겨울 광주 학동에 전재민촌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년여 공사 이후 1947년 전재민들은 입주했고, 학동의 백화마을이 이뤄졌다. 백범의 해방 이후 전재민 구호의 제1탄이 광주에서 시작된 것도 의미심장하다.

 

갱생촌 850평의 대지에 4~4.5평의 작은 건물 100여 가구를 세워 전재민의 보금자리가 마련됐다. 김구 선생이 백 가구가 화목하게 살아라했던 당부대로 백화(百和) 마을이라고 이름 붙였다. 끼니마다 땟거리를 고민하던 전재민들에게 백범 선생의 이 희사는 너무도 감격적인 것이었다.

 

백화마을은 일제강점기 더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1930년대 광주천 상류 직강화 정비공사를 하던 일본인들은 천변에서 살던 빈민들을 쫓아내고 학동에 정착하도록 했다. ‘갱생부락이라고 이름 붙은 마을은 가운데 공터를 중심으로 팔거리가 조성된 기하학적 형태였다.

 

학동 8거리와 백화마을은 2000년대 초까지도 도시 골목 문화가 살아있던 동네로 이웃들이 가깝게 지냈다. 어려워서 더 인심 좋은 동네였다. 그러나 2009년 백화지구 재개발사업과 2011년 주거환경 개선 사업으로 더 이상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 자리에 광주광역시와 동구청은 학동 역사공원을 조성하고 한켠에 백화마을의 대표적인 가옥 형태인 말집 조형물을 세웠다. 집 구조가 한 지붕 아래 6가구가 나란히 이어진 마구간 모양이라 말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광주백범기념관은 백범문화재단이 국비와 지방비 외에 자부담을 합쳐 124200만원을 확보해 건립했다. 20151026일로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6주년이 되는 날 개관했다.

 

광주백범기념관은 전시실, 교육실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실에는 김구 선생의 생애와 백범일지 등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또 김구 선생과 전라도, 백화마을의 인연, 광주 출신 독립운동가도 소개하고 있다. 광주백범기념관은 국가보훈처 현충 시설로 지정을 받았고 백범 김구의 광주 사랑의 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체험 활동을 다채롭게 펼치고 있다.

 

백범은 백정범부(白丁凡夫)의 줄임말인데, 가장 낮은 계층인 백정과 평범한 범부들의 애국심이 자신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되겠다는 바람에서 지은 호이다. 백범은 그렇게 우리나라가 범부들의 문화 민족이 되기를 원하던 비범했던 겨레의 스승이다.

 

서울과 광주에만 오직 백범기념관이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가난하더라도, 힘이 없더라도 우리가 배우고 싶은 백범 정신은 너나를 행복하게 하는 높은 문화의 정신이다. 문화예술의 도시 광주에서 한없이 바라는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를 아는 지난행이(知難行易)’의 정치 지도자와 단체장을 한없이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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